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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억 달성 프로젝트

해로운 직장에서 당장 뛰쳐 나와라

by Jyubaeng2 2023. 7. 17.

이직이 나쁜 것은 아니다

여기다라고 생각되기 전까지는 최소 이삼 년에 한 번씩 이직을 생각해야 한다. 

 

한 직장에서 최소 삼 년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아주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던 시절에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준 직상 상사가 있었다.

 

Liping이라고 하는 중국계의 이민 1세대였는데, 한 번은 개인 면담을 하다가 상위 레벨 high level: refers to a more abstract or overarching perspective, focusing on the broader concepts, strategies, or goal)의 일을 맡기겠다고 하길래 질문을 했었다.

 

나 스스로의 생각에 경험이 충분치 않으니 보다 하위 레벨 (low level: refers to a more detailed or specific perspective, focusing on the finer details, components, or technical aspects of a system or situation)에서 경험을 더 쌓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을 때 상당히 어이가 없어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디테일한 일은 첫 직장에서 2~3년 했으면 그 후에는 반복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너의 상사가 너에게 같은 일만 반복적으로 시킨다면 너에게 더 이상의 발전이 없으므로 당장 나와야 한다.

물론 그 말이 2~3년마다 이직을 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나도 현재 직장을 찾기 전까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3년을 일하고 이직을 했었다. 

 

여기다라고 생각되기 전까지는 두려워하지 말고 언제든 기회가 보일 때 이직을 할 거란 마인드를 가지고 내가 향하고자 하는 곳으로 능동적으로 발을 옮겨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여기다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는 그 직장에서 얼마든지 오래 일해도 된다. 참고로 나는 현재 직장에서 8년째 근속 중이다.

 

해로운 직장이 주는 신호들

해로운 직장은 반드시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멀쩡히 직장에 잘 다니고 있는데 3년 차가 되었다고 해서 바로 이직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좋은 기회와 발전이 4년 차에도 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이직을 고려하기 시작해야 할까? 해로운 직장이 주는 신호들을 몇 가지는 미리 인지하고 있어야 나중에 이직해야 할 상황에 처했을 때를 파악하기 쉽다. 전적으로 내 경험에 기반한 신호들을 몇 가지 공유하고자 한다.

 

1. 프로세스와 프로젝트 업무의 비중이 언발란스한 경우

프로젝트는 기업에서 특정 목표를 달성하거나 독특한 제품, 서비스 또는 결과물을 제공하기 위해 수행되는 일시적인 작업을 의미한다.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시간제한이 있으며 명확한 목표를 가지며 특정 리소스가 할당되며, 여러 팀이 조화롭게 협력하여 수행된다. 


프로세스는 기업에서 특정 결과물을 달성하거나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연관된 일련의 활동 또는 단계를 의미한다. 프로세스는 일반적으로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며 표준화되어 있으며, 재무 업무에서 효율성, 정확성 및 규정 준수를 보장하기 위해 수행되며 일반적으로 정립된 지침, 워크플로우 및 통제에 의해 관리된다.


기업에서 프로젝트는 명확한 목표와 특정 시간대에 일시적으로 수행되는 반면, 프로세스는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일상적인 업무에서의 효율성과 일관성을 위해 수행된다. 따라서 프로세스의 수행을 통해 직업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반면 프로젝트의 수행을 통해서 성과를 추구한다.

 

프로젝트와 프로세스의 황금비율 같은 것은 없지만 내 재무회계와 세무부서에서 일했던 경험 상 50대 50이 가장 적합했다. 그 이유는 회계의 경우 매달말에 벌어지는 클로징과 매달 초에 벌어지는 리포팅으로 인해 10일 정도가 바쁘게 돌아가며, 세무의 경우는 매달 10일에서 20일 사이에 있는 세금 보고와 납부로 인해 10일 정도가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머지 10일은 사무실이 아주 천천히 운영이 되는데 보통 이 시기에 여유롭게 일하기도 하지만 따로 성과를 내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내고 수행한다. 이 기간이 보통 10일 정도이기에 한 달에 보통 주말을 제외한 20일을 일하는 날이라 한다면 50대 50의 균형이 잡히는 것이다.

 

문제는 본인 업무에 프로세스의 비중이 높은 경우이다. 앞서 설명했듯 프로세스는 대기업과 같은 경우 SOX control에 의해서 엄격하게 통제되어 정립된 지침에 따라 일을 수행하면 되기 때문에 심한 경우 수행자가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경우에도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세스는 직장인에게 다할 나위 없는 안정감과 일을 무사히 해냈다는 충만함을 제공한다. 본인의 업무들을 프로세스들로 가득 채워 넣었을 때 한 달 내내 매우 바쁘게 돌아간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땐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진실된 동료의 입장에서 그를 봤을 때 그의 상태는 아주아주 위험한 상태이다. 자기 업무나 부서를 넘어서 새로운 경력이나 인맥을 쌓으려면 부서 내에서 다른 팀과의 연계나 타 부서의 연계를 통해 그 저변을 넓혀야 하는데 정형화된 프로세스의 반복 속에 스스로를 던져 넣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일의 공백이 가져다주는 불안함을 알 것이다. 바쁜 시기에 미친 듯이 쳇바퀴를 돌다가 땅 위로 내려왔을 때의 불안감이나 허전함을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 공백을 채워야 하는데 프로젝트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안감을 준다.

 

그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하여 스스로 프로세스들로 본인의 시간을 가득 채우고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의 상사도 얼씨구나 골치 아픈 프로세스들을 잔뜩 넘겨줄 준비를 할 것이다.

 

그렇게 모든 업무를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들로 가득 채우고 그 일들을 매달 반복하다 보면 그땐 진실로 기업의 부속품으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엔 반드시 스스로 자각을 하여 프로젝트의 비중을 다시 올려야 한다.

 

만약 메니져와 업무 면담을 통하여 그 비율이 조정이 되지 않는다면 그 직장은 나에게 해로운 직장이며 나의 성장을 방해하는 직장이므로 슬슬 이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2. 같은 일만 반복하는 경우

한 번은 홍콩에 직업연수차 몇 개월을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중에 알게 된 회계사가 있었는데 말하기를 자신은 PWC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메니져가 은행계정조정 (Bank reconciliation) 작업만 7년을 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일을 오래오래 해서 소위 장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과연 좋을까? 내 생각엔 비지니스의 세계에서 초전문화된 일이 아닌 이상 한 가지 일만 해서는 절대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가 없다. 왜냐하면 승진을 하여 매니저 급이 되었을 때 많은 업무들을 파악하고 총괄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오랜 시간 한 가지 일만을 계속했다는 것은 기회비용적인 측면에서 다른 일을 배울 기회를 전부 놓쳤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프로세스들이 상당 부분 정형화 되어 있는 대기업들의 경우 개인들은 보통 1~3의 프로세스들을 맡는데 하나의 프로세스는 솔직히 말해서 3개월이면 상사의 보조 없이도 혼자 처리할 수 있도록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이 일을 뭣하러 6년이나 반복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성격 상의 이유로 새로운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한 자리에서 오래 일하는 게 적정에 맞을 수 있다. 메니져들도 사람을 관리하는 보직에 있기 때문에 보통은 상담을 통해 그것을 파악하고 그런 직원들은 한 자리에 오래 두고 몇 가지 일만 맡긴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말릴 방법은 없다. 분명한 것은 그렇게 되는 순간 높은 확률 승진은 물 건너가고 당연하겠지만 연봉 2억으로의 여정은 그곳에서 종료된다는 것이다. 

 

야심이 있는 직원들은 경력에 깊이와 확장을 이루기 위해 한 가지 프로세스를 맡으면 그것은 완전히 이해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들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하면 메니져에게 반드시 승진을 통한 업무 확장이나 다른 팀이나 부서로 업무 로테이션을 요구한다. 

 

3. 불편한 인간관계가 일에 방해가 되는 경우

불편한 인간관계는 일보다는 반드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것은 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따라서 본인 경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오래전의 일이다. 먼저 말을 하기에 앞서 본인은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했었고,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오히려 아시아 남성으로서 미국사회에서 받는 편견과 선입견에 맞서야 하는 입장이지 쓸데없는 일에 힘을 쓸 필요가 없는 입장이다.

 

한 번은 회계 부서의 디렉터가 나를 승진을 시키면서 내년에는 다시 메니져로 올려줄 테니 두세 명의 일을 감독하고 리뷰하는 일을 추가로 시켰었다. 그전까지 나는 보통 일을 80%는 특수한 프로젝트들만 맡아서 했다가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팀원들과는 헤어지는 일을 반복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꾸준하게 맡아서 감독한다는 일에 익숙하지가 않았다.

 

당연히 사람을 감독하는 스킬이 부족한 상태였는데, 하필이면 감독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평범하지는 않은 케이스였다. 한 명은 무려 자녀가 7명인 싱글맘이었고, 한 명은 화려한 치장을 하고 다니는 게이였다.

 

처음엔 의욕도 넘치고 배려도 많이 하려 했으나, 아이들의 일로 집중이 어려운 것인지 싱글맘인 직원은 용납할 수 있는 선을 넘어 잦은 실수를 반복했고 업무 처리도 기한을 넘기기가 일쑤였다. 덕분에 나는 그녀가 퇴근 직전에 넘겨준 엉망으로 처리된 일을 밤늦게 리뷰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해야 했으며 실수가 어디서 나올지 모른다는 스트레스에 밤낮으로 시달려야 했다.

 

게이 직원은 일터에서 감정싸움을 했다. 대여섯이 모인 미팅에서 무엇인가에 삐졌는지 한마디도 안 하고 사람들 물음에 대답도 안 한다던지, 미팅 중에 키우는 강아지들을 보여주며 흐름을 완전히 산으로 가게 만든다던지 등등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정서적 어색함 (Emotional awkwardnesss)을 아득히 뛰어넘어 버리기가 일쑤였다.

 

그 후로 일 년은 이들 뒤치다꺼리하는데 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 버렸다. 프로젝트 프로세스의 발란스도 깨지고, 일의 능률도 오르질 않았고, 일상생활 패턴에도 나쁜 영향이 갔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드니 다른 진취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자기 계발이나 발전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이런 불편함이 오래 지속이 되었을 때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나의 경우 하루는 내가 왜 이런 관계를 지속하며 참아내 야한가에 대해 고민을 깊게 해 봤다. 결국엔 메니져가 되어 이런 사람들도 다루기 위함이 아닌가. 하지만 이 정도까지의 불편함을 감내해야 할 가치가 이들에게 있는 것인가를 잘 따져봐야 했다.

 

큰 이득이 없다면 참아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마음속에서 결론을 내리고 행동을 빨리 했다. 타 부서에 상급 포지션으로 전근 신청을 해서 성공적으로 부서를 옮겼고, 그다음부터는 일에만 집중하는 동료들을 만나 다시 모든 걸 회복했다. 

 

손발이 척척 맞는 동료들과 일하면서 생각하기를 뭣하러 바보처럼 1년을 버텼을까 후회막심이었다. 

 

4. 몰랐던 가족 관계가 보이는 경우

내가 직원 5천 명 규모의 IPO를 앞두고 있던 중견 기업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본사는 시애틀에 있고 북버지니아에 60명 규모의 Tax Compliance 팀이 사무실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SALT (State and Local Taxes)의 자동화 스페셜리스트로 있었는데, 북버지니아의 특성상 워낙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어느덧 직장 동료들에게 익숙해질 무렵 해서는 그들 간의 관계도 슬슬 파악할 수가 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한 사무실 같은 부서 안에 그렇게 많은 사적인 인간관계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 제대로 된 회사라면 한 부서 안에서 이런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을 같이 일하게 두진 않는다. 이 직장에서의 기억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남아있는데 그 이유는 사적인 인간관계로 인해서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나에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하나의 예를 들자면 지미라는 독일계의 직속 상사가 있었다, 나와 둘이서 자동화 팀을 창설해서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부서의 디렉터와 알게 모르게 연애를 하고 있었다.

 

팀의 특성상 프로세스의 혁신을 위한다고 아주 많은 접근권한들이 주어졌었다. 그중에 하나는 고객 기업들이 주정부들에게 각종 세금 납부를 대행할 때 소수점 이하의 금액을 처리하는 방식을 라운딩 하는 것으로 일괄 변환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지미 그 친구가 소수점 이하의 금액을 전부 반내림시켜서 주정부에 세금 보고 / 납부를 해놓고 회사 시스템 상에서는 전부 반올림을 시켜놓은 것이었다!

 

주정부에 납부할 세금이 3000.7불이라면 주정부에는 3000불을 납부하고, 시스템에는 3000불을 기입하여 수천 개의 고객 기업들로부터 1불씩의 차액을 매달 본인 계좌로 입금한 것이다.

 

나는 같은 팀이면서도 다른 부분의 일을 맡아서 했고 당시엔 회사의 중역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팀장이 사기를 저지르고, 감사팀에 의해 부정행위가 걸리고, 징계 위원회와 여러 자체 청문회 등등이 열려 해고를 당하는 날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야 자초지종을 언듯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부서 모두의 존위를 위협했던 진짜 심각했던 문제는 그다음인데 지미와 연애를 하는 디렉터가 뭐를 잘못 먹었는지, 사랑의 힘이었는지 징계위원회에서 지미와의 관계를 밝히고 본인이 시스템의 점검차 지시를 해서 그랬다고 지미를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일이 일파만파 더 커졌고 회사의 리더십은 우리 부서의 디렉터를 도저히 더 이상 신임할 수 없다고 판단, 부사장을 보내어서 상황 정리에 나섰다. 

 

결론적으로 북버지니아 사무실을 폐쇄되기로 결정이 되었고, 부서 전체를 북캐럴라이나의 덜햄으로 옮긴다고 통보가 왔으며, 우리 팀원들은 패키지를 받고 회사를 떠나던지 아니면 북캐럴라이나로 전근을 가던지 선택지를 받게 되었다.

 

이것은 사적인 관계가 만들어낸 극단적인 예시지만 이 일은 실제로 벌어졌고,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갈등과 대립구도가 같은 부서 내 가족관계로 인해 만들어졌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일들로, 물론 그 안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으나, 내 경험상으론 직원들에게 은밀한 불만 요소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시한폭탄이나 다름이 없다.

 

적당히 챙길 것을 챙기되 회사 차원에서 이들을 타 부서로 갈라놓는다던지 승진이나 업무분담 과정에 절차상의 투명성을 늘리지 않는다면 마음속으로는 이직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사업이 너무 영세해서 진짜 가족이 대놓고 경영을 하는 기업엔 당연한 말이지만 발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 그런 비즈니스는 애초에 가족끼리 벌어먹기 위함이지 비니지스가 성장하는 속도로 엄청 더딜뿐더러 나를 성장시켜 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먹을 파이도 작고 먹어도 가족 먼저 먹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일을 한다면 큰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5. 회사가 성장하지 않는 경우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가 성장을 해야 직원들 복지를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고 월급도 조금이라도 인상을 시켜줄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한다는 것을 일개 직원으로서는 파악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느 세월에 느릿느릿 성장하는 회사에 맞춰 연봉 2억 달성을 이뤄내겠는가?

 

 가령 앞서 언급했던 IPO를 준비하던 회사는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직전에 매출과 순이익 등이 연 20%씩 급성장하던 회사였고 그에 따라 직원 복지며 메리트를 올려주기 시작했는데 2년 연속으로 월급이 10%씩 상승했었다. 3년째엔 주춤했었는데 그래도 8%를 인상해 줬었다.

 

그렇게 회사가 성장할 경우 한 회에서 오래 머무르며 연봉을 올리는 게 이득이다. 하지만 직원 규모 6000명 장도의 중견급 통신회사에서 일했을 때는 연봉 상승률이 2~4%를 왔다 갔다 했고 그 이상을 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통신 시장 자체가 이미 몇 개의 대기업이 장악한 레드오션이 이었고 그 회사는 유선 B2B에 집중을 해서 성장 가능성이 거의 전무했었다.

 

그런 경우 매년 2%씩 10년 올라봐야 베이스 연봉에서 20% 정도 상승할 뿐이다. 이런 회사의 분위기는 혁신과 발전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현장을 보존하는데 전략이 맞춰져 있었으므로 아무리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내 맡은 업무의 혁신을 꾀해봤자 그에 따라오는 보상은 생각보다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이 회사는 다른 회사에 흡수 합병이 되었고 통신장비 및 인프라 시설 관리하는 기술직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이 해고를 당했다. 

 

물론 일개 직원으로 있을 때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요모조모 따져서 판단을 내리기는 아주 힘들다. 하지만 성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연봉 인상률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본인 판단에 회사에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줬는데 그에 따라오는 보상이 적다면 그 회사는 성장하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게 쉽다.

 

이직을 원한다고 쉽게 되진 않는다

해로운 직장은 반드시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이직을 해야 한다고 쉽게 말했지만 정작 이직을 결심하고 잡마켓에 뛰어들면 내가 몰랐다거나 알고 싶지 않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내 값어치가 내 생각보다 높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또 무작정 아무 때나 이직한다고 해서 소위 점프를 해서 프로모션을 받아 이직을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10%의 연봉인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필요조건들이 충족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때를 잘 살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때나 아니면 이직하도록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성공적인 이직을 하기 위해선 항시 이직을 하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실제로 매 순간 이직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추후에 서술할 이직의 필요조건들을 충족시켜놔야 한다.

내 경험 상 사회 초년 생일 때의 이직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내 전공과 조금이나 쌓아놓은 경력의 이점을 찾아서 꼼꼼하게 일자리들을 모니터링하고 리뷰해서 소수의 일자리들을 찾았다. 레쥬메를 냈는데도 연락이 안 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하며 맞춤형 레쥬메와 자소서를 공들여 쓰고 서너 군데 응시를 했었다.

참담하게도 연락이 온 곳은 전무했다. 

슬슬 악에 받쳐서 내 전공과 경력과 완전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써먹을 수 있는 일자리들 10개 내외를 추려서 맞춤형 레쥬메를 뿌렸다.

그럼에도 연락이 온 곳은 전무했다.

이쯤 되면 사람이 완전히 악에 받치게 된다. 그때부턴 타이틀만 보고 대충 연관된 직업이다 싶으면 일반형 레쥬메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0개 정도 뿌렸을 때 약 일곱에서 열 군데에서 연락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전화 면접을 통해 세네 개가 직접 면접으로 올라갔었고, 최종적으로는 한두 군데에서 오퍼를 받았었다. 이 과정은 추후에 자세히 서술하도록 하겠다.

결론적으로 요약을 하자면, 본인 경력에 해로운 직장은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그런 직장은 항상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므로 그 신호를 잘 포착할 수 있도록 경우의 수들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호가 느껴졌을 때는 심사숙고를 하되 최대한 빠르게 판단하여 망설임 없이 행동에 옮겨야 하며, 무엇보다 언제든 이직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와 실제적인 준비가 되고 있어야 한다.

 

이직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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